지옥의 5일 견디기
남편에게 그간의 일들을 설명을 했더니 빨리 탈출해야 하는 곳이라고 했다. 그걸 어떻게 버티냐면서 하루 빨리 퇴사하라며 나를 다독였다. 돌이켜보면 내가 무지했던 거였다. 내가 바보였고, 미련했던 거였다. 버티면 될 줄 알았으니까. 버티면 모든 것에 익숙해지고 조금 더 발전되어 능숙해져 있겠거니하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멍청한 거였다. 일은 결국 해결되었지만, 내 몸둥인 망가져버린 뒤였다. 신호를 읽지 못했던 거였다. 내 몸이 살려달라 무수히 외치던 그 신호 말이다. 결국 내가 나를 외면했던 거였다. 업무는 그렇게 외면하지 못했으면서 정작 제일 중요한 내 건강을 외면하고 있었던 거였다.
지옥같았던 새벽을 보내고 아침이 밝았다. 그리고 나는 어김없이 출근해야 했다. 주말을 앞두고 있던 금요일이었던 지라 오늘 하루만 잘 버텨보자 싶었다. 내 상태가 좋지 않았기 때문에 이 상태로 지하철을 타긴 무리였다. 그래서 남편이 회사까지 차로 바래다주었다. 차를 타고 이동하는 순간에도 몇 번이고 갑갑해서 창문을 열었다 닫았다를 반복해야 했다.
회사에 도착해서 남편이 카페에 날 데리고 가 따뜻한 유자차 한잔을 손에 쥐어주었다. 오한과 떨림 그리고 손저림은 여전했기에 걱정스런 마음에 남편은 그리했던 것 같다. 그러면서 정신건강의학과 한번 가볼까? 라며 조심스럽게 운을 뗐으나 나는 말도 안된다며 손사레를 쳤다. 정신과라니. 저런 말을 할 정도로 너무 걱정하는 남편에게 미안해서 괜찮다고 이만 가보라며 그를 엘레베이터 앞까지 배웅했다. 남편을 보내고 아직 잔여파가 남아있어서 상가 공용 의자에 힘없이 앉아있었다. 조금 쉬고 올라가자 라는 생각으로 시간을 확인하며 쉬고 있었을 즈음, 회사에서 날 잘 챙겨주는 언니에게 카톡이 왔다.
오늘 밥 뭐 먹을래?
눈물이 터졌다. 언니에게 울면서 전화했다. 그러자 1층으로 쏜살같이 나를위해 뛰어와줬고 언니의 부축으로 사무실까지 무사히 들어갈 수 있었다. 그리곤 정말 아무일 없는 사람처럼 모니터를 켜고 업무 준비를 시작했다. 그게 가능했던 건 내가 마스크를 쓰고 출근했던 덕분이었다. 마스크를 쓰면 내 상태와 표정을 어느정도 숨길 수 있을테니까.
언니는 내게 공황장애인 것 같다고 말했다. 남편이 조금 전 말했던 것처럼. 하지만 난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나는 정말 정신력 하나는 강한 사람이라 자부했던 사람이였기 때문에 내가 공황장애일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거 공황장애가 어쩌면 맞겠구나 싶었다.
왜냐면 업무 시작하는 순간, 모니터가 나를 향해 튀어오르는 것같은 느낌과 다시 또 찾아오는 심장의 두근거림 그리고 통증, 과호흡, 어지러움, 삐 소리나는 이명소리가 또다시 급습해 왔기에.
결국 나는 자리를 박차고 나와 그대로 화장실로 달렸다. 머리카락을 쥐어 잡고 침착하려 애썼다. 떨리고 저린 두 손을 깍지껴선 하얗게 질릴정도로 움켜잡았다. 그리곤 달달 떨리는 입술을 뻐금거리며 줄기차게 속삭였다.
괜찮아. 괜찮아.
괜찮다. 괜찮다.

이 날은 업무를 포기해야 했다. 내 몸이 백기를 든 상황이었으니까. 그래서 최대한 몸에 무리가 가지 않게 쉬엄쉬엄 업무를 수행했다. 그렇게 퇴근 시간이 되었고 몸 상태가 호전이 되지 않은 상태였기에 남편이 퇴근 후에도 데리러 와줬다. 그렇게 나는 최악의 몸 상태로 주말을 맞이했다. 거진 이틀 반정도를 집에서 마음 놓고 휴식을 취할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에 심적으로 안심이 되었던 건지 그래도 조금은 위안이 됐다. 긴장이 풀리니 그제야 평안이 찾아왔다. 남편이 저녁밥도 맛있게 해주고 재밌는 영화도 보고 산책도 하고 따뜻하게 뎁혀진 침대에 들어가 폭닥한 이불을 목까지 덮고 누워선 수다도 떨며 잠마저 포근히 잤다.
그렇게 아무 탈없이 주말은 평안히 지나가는 줄 알았다. 그러나 아니었다. 또다시 짓눌리는 기분에 새벽에 잠에서 깨어 이번엔 불면증에 시달려야 했다. 시간은 새벽 2시. 그때부터 답답한 통증과 열감을 어떻게든 털어내려 찬물을 몇 잔이고 목구멍으로 들이부었다. 그러나 심장부근의 통증은 여전했고 어떻게든 숙면을 취하려 시도했지만 잠이 오질 않았다. 가장 잠이 잘오는 태아자세를 취해도 잠이 오질 않았다. 괴로웠다. 불면증에 흉부의 통증 그리고 열감 때문에 결국 거실로 나와 정수기 앞에 주저앉아 찬물만 연신 들이켰다. 남편도 걱정이 됐는지 안방에서 나와 내 앞에 쭈그려앉아 나를 살폈다.
그에게 미안했다.
너무 많이.
나로 인해 남편 또한 수면 패턴이 깨지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남편은 날이 밝는대로 정신건강의학과에 한번 가보자고 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그렇게 어서 빨리 아침이 되기를 빌었다. 얼륻 아침이 돼서 이 괴로움에서 빠르게 벗어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랬다.
새벽 4시까지 잠을 설치고 설치다 겨우 잠들고 일어난 시각, 아침 8시였다. 몽롱한 정신이었고 온 몸이 무거웠지만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다시 누워봤자 잠은 또 오지 않을 테니까. 피곤에 찌든 상태로 거실 밖으로 나가 찬물을 들이켰다. 심장 통증은 여전했기 때문이다.
남편은 나보다 먼저 일어났었고 이미 병원 서치를 다 끝내놨다고 한다. 오픈시간에 맞춰 연락 돌리고 바로 출발하자고 했다. 나는 알겠다고 했고, 남은 시간동안까지만 집안 청소 좀 해놓자 싶어 먼지털이개를 집었다. 그랬더니 남편이 아픈 이 상황에도 무슨 청소냐며 나를 가로막아섰다. 하지만 집안에 먼지 쌓이고 흐트러진 걸 원채 못보는 성격이라 나는 그와 시선을 피하며 이거와 병은 별개라고 남편에게 고집을 부렸다. 그랬더니 우리집보다 깨끗한 집 없다며 청소 안해도 된다는 잔소리가 날아왔다. 그리고 병적으로 청소에 집착하는 것도 의사선생님께 꼭 말하라며..
그러나 나같은 청소요정에겐 그런 잔소리는 다 무소용이다.
아니. 솔직히 더러운 것보단 깨끗한 게 훨씬 낫잖아? 그리고 강요안하고 온리 순수 내가 다 청소하는데 세상에 이런 각시가 또 어딨어?
(물론 남편의 청소스타일이 마음에 안들어서 내가 다 하겠다고 한 사람)
1시간 가량 청소를 하고있었을까. 거실 너머로 남편이 어디론가 백방으로 전화를 거는 소리가 들렸다. 그의 통화소리에 내 귀는 쫑긋거렸으나 뭔가 좋지 않은 분위기가 연이어 느껴져 베란다 틈새를 닦고있던 걸레질을 멈출 수 밖에 없었다. 결국, 모든 통화가 끊겼는지 정적이 일었다. 내가 슬쩍 왜 뭐래? 라고 물어봤다. 그러자 그가 내쪽으로 걸어오더니 난감하단 표정으로 정신건강의학과는 모두 예약제로만 운영되고 있어서 당일 방문 당일 예약은 모두 안된다고 설명을 해왔다. 그의 잘못도 아닌데 그는 이럴줄 알았으면 미리 예약할껄. 미안해. 라며 오히려 본인이 나에게 사과를 한다. 나는 어이없게 웃으며 그게 왜 자기 잘못이냐며 한번도 가 본적 없으니 우린 당연히 몰랐던 거라고 난 괜찮으니 걱정마라고 안심시켰다.
사실 증상이 심해졌을 때 엄마에게도 이 사실을 알렸었다. 무지막지하게 걱정하실 걸 알았지만 그래도 어차피 엄마한테 들키는 것은 순식간이기에 바로 이실직고를 했더랬다.(울엄마 내 몰골상태만 봐도 대번에 뭔가 있다는 걸 귀신같이 눈치채시는 분..) 남편도 병원을 백방으로 수소문하고 있었을 때 엄마도 빠르게 진료 가능한 병원을 찾고 있었나 보다. 남편은 집 동네 쪽으로 엄마는 회사 주변으로 말이다. 엄마가 알아본 곳도 남편이 알아본 곳도 공교롭게 똑같은 날짜를 말했다.
두 곳 모두 가장 빠르게 진료를 볼 수 있는 날짜는
다음주 목요일이라고.
나는 남편에게 엄마가 말한 병원도 목요일이었어. 라고 하니 우리 둘다 우스갯소리로 이야 정신과 돈 많이 벌겠는데, 라며 잠깐동안 농담을 부렸다. 그리곤 다시금 걸레질을 분주히 움직였다. 목요일이라. 단순하게 생각하면 5일이지만 그때까지 내 몸이 버텨줄지가 미지수였다. 애써 웃고있지만 난 여전히 불안한 상태였고, 청소에 집중하고 있지만 여전히 갑갑한 증상과 열감은 나를 괴롭게 했다. 그래도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결국 5일을 어떻게든 버티는 수밖엔.
문제는 회사 근처냐, 집 근처냐를 선택해야하는데. 지금의 처지로는 회사 근처에서 치료를 받는 것이 낫겠다고 판단하여 엄마가 말한 병원으로 예약을 진행했다. 그렇게 목요일 6시로 예약 완료가 됐고, 이제 나는 그때까지 내 몸을 잘 추스려야 한다. 최대한 긍정적이게 생각했다. 그래도 예약 잡았으니까.
힘들어도 5일이라고.
5일동안만 잘 버텨보자고.
그리 마음 먹고 토요일은 온전히 남편과 함께 산책도 하고, 맛있는 것도 먹고, 재밌는 영화도 보고 그나마 안정적이게 숙면도 취할 수 있었다. 단지 불편한게 있었다면 흉부쪽 통증이었지만 견딜 수 있었다. 그랬다. 토요일은 정말 그렇게 평온하게 지나갔다. 정말 그랬는데. 일요일 저녁. 지옥이 다시금 시작됐다. 남편이 차려준 저녁밥상을 먹고 있다 정말 갑자기 찾아왔다. 그냥 내일 출근이네, 이 생각만 잠깐 했을 뿐인데 불안감이 확 엄습하더니 빠른 속도로 턱 막히는 숨, 짓누르듯 아픈 흉부, 빠르게 뛰는 심장, 그로인한 과호흡, 손떨림과 저림증상, 그리고 바닥이 나에게로 튀어오르는 어지러운 느낌. 귀에서 들리는 이명소리.
나는 가슴을 부여잡고 헉헉여야만 했다.
놀란 남편이 내앞에 무릎 꿇고 괜찮으냐고 묻는다. 그러나 나는 답 할 수 없었다. 남편의 말이 잘 들리지 않고 웅웅였기 때문이다. 정말 혼절 직전이었다. 눈을 질끈 감았다. 정신을 잃지 않으려 호흡도 크게했다. 냉랭해지는 손을 불끈 쥐고 그렇게 어깨를 들썩이며 심호흡을 했다. 20분. 지옥같은 20분이 지나고서야 나는 다시 평정심을 되찾을 수 있었다. 온 몸이 무거웠다. 눈꺼풀도 무거웠고, 아무것도 하고싶지 않았다. 토닥거리는 남편의 손길에 나는 확실하게 깨달았다. 이 불규칙성을 보이는 발작증상은 아무래도 회사 때문이라고. 처음엔 왜이러지 싶었고, 그 이유가 무엇인지 잘 몰랐는데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니 모든 원인은 회사를 다니고 나서부터 발생하기 시작했다. 앉아서 업무를 할 수 없는 상황까지 있었으니 말이다.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음에도 그저 나는 버티기만 했으니 골병이 든거다. 언제터질 지 모를 시한폭탄과도 같은 내 상태. 결국, 나는 이 상태로는 도저히 지금의 회사를 다닐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다음 날 나는 상급자분께 퇴사자의 공통 국물 한마디를 던졌다.
잠깐 드릴말씀이 있습니다. 라고.
1차면담 그리고 2차면담을 끝냈다. 단 하루만에 말이다. 갑자기 이런 말을 들으니 좀 그렇네 왜 그때 면담 안했냐라는 말이 내겐 상처의 말이었지만 어차피 좋은 소리는 못들을 거란건 예상을 했었기에 큰 타격은 없었다.
그냥
그러게요. 어떻게든 버텨봤던 건데 죄송합니다.
라고 굽힐 수 밖엔 없었다.
이러나 저러나 퇴사 얘기를 꺼내는 순간부터 불편해지는 건 똑같으니까 되도록이면 나는 그냥 수긍하는 쪽을 택했다. 차라리 그게 나에겐 편하니까. 어차피 가족회사고 가족들의 지인들로 포진되어 있는 회사니까 뒷말은 안나올 수 없을테니 그냥 내가 굽히는게 퇴사하는 순간까지 편할 것 같았다.
그렇게 나의 퇴사 카운트다운이 시작됐다.
곰곰히 생각했는데 내가 이 회사에서 5개월을 버틸 수 있었던 건 대리님과 주임님 그리고 언니 덕분이 컸다. 그래도 좋은 사람들이 3명이나 있으니 그나마 내가 견딜 수 있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이들이 없었음 나 역시도 도망간 앞전의 여직원들처럼 채 한달도 못채우고 런쳤을 게 분명하다. 대리님과의 면담에서는 정말 죄송한 마음이 컸지만 나로인해 고통 받고 있는 가족들을 생각하면 그만둬야는 쪽이 맞았기에 나로써는 이게 최선의 방법이었다. 업무를 줄여주겠다, 조금 늦게 출근하는건 어떻겠느냐 좋은 제안이었지만 지금의 내 건강상태와 현실적으로 그건 실현 불가능한 구조란걸 알기에 거부의사를 밝혔다.(그렇게 되면 타부서의 텃세는 더 심해질게 분명했기에) 그렇게 한달 뒤 퇴사로 말씀드렸었지만 사람이 안구해지니 한달만 더 다녀달라고 하여 그럼 딱 두달까지만 다니는 것으로 협의를 봤다.
퇴사 면담이 끝나고 나와 잘 어울렸던 언니와 주임님에게 건강상의 이유로 퇴사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러자 괜찮냐부터 먼저 물어오는 그 말 한마디에 긴장이 풀렸다. 나는 사실 공감을 바랬던 것 같다. 갑과 을의 입장이 아닌 오로지 사람 대 사람으로써의 공감 말이다.
병원가기 전까지 증상은 2번정도 나타났다. 그때마다 작업을 멈추곤 눈을 감고 10분정도 숨을 고르어야 했다. 가장 고통스러웠던 건 흉부쪽이였다. 열감과 통증은 없어지지 않고 지속적으로 나를 압박해봤기 때문에. 그래서 약국으로 향했다. 회사 근처에 있는 약국으로 가 내 증상을 설명했다.
그런데 정말 웃기게도 눈물이 터졌다.
약사분에게 단지 내 증상을 설명했을 뿐인데 눈물이 났다.
약사님은 극F였다. 마스크를 낀채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는 나를 보고 본인이 더 놀래서는 괜찮다고. 울어도 된다고. 본인도 갱년기라 불면증이 심하고 그랬는데 안정제약 먹고 큰 도움됐다고. 그러니 괜찮다고. 병원 이틀 뒤에 가니까 이틀치 약 줄테니 잘 챙겨먹고 힘내라고. 티슈 원하면 더 가져가라고.
마지막 말에 웃음이 터져서 그 약사분과 실없이 웃었다. 아무래도 나는 누군가의 위로가 필요했나 보다. 이렇게 생판 모르는 사람에게 위로 받으니 좀 괜찮아지는 걸 보면. 정말로 공감이 필요했나 보다.
좋은 약사님 덕분에 이틀동안 약국 심신안정제로 잘 버텼다. 정말 약사님 말대로 심리적으로 도움이 되었다. 그렇게 지옥같았던 5일을 겨우겨우 버텨서
드디어. 내 인생 최초,
정신건강의학과를 방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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