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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복일지

공황장애 퇴사일기 1.

내 몸이 이상하다

 

나는 건강한 사람이라 자부하며 살아왔다. 3n년생 동안 무한한 일들이 있었어도 나의 최대 강점 강한 정신력과 인내심으로 잘 버텨왔다고 생각했다. 회사를 이직하고 이직하면서 별의 별 일들이 있었어도 나는 죽어라 버텼었다. 내가 제일 잘하는 게 버티기니까. 그러다가 도저히 버틸 수 없는 상태가 되면 그때마다 나는 가슴 속에 품어둔 사직서를 던졌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지 라는 말을 나는 그대로 이행하며 살아왔다. 매일 매일 폭언을 하는 상사, 직원을 자신의 하인으로 아는 상사, 사람 귀한줄 모르는 상사, 일은 하기 싫으니 아랫사람에게모든 일을 떠넘기는 상사, 직원들의 잦은 퇴사에 떠넘겨지는 막대한 양의 업무들. 그럼에도, 나는 버텼다. 오만 소리, 오만 갑질 다 당하면서 말이다. 그래도 그때는 20대였고 젊었으니 이런 일도 있고 저런 일도 있는거지 하며 진짜 똥 밟았다 생각하고 웃어 넘겼던 것 같다. 그렇게 암흑기만을 걸어오다 나에게도 좋은 직장에 좋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서 참 행복한 6년을 맞이했었다. 물론 기한이 정해져 있었던 계약직이었지만 정규직 계약직 구분없이 모두들 나를 너무 잘 챙겨주셨다. 그렇게 계약기간이 종료되고 나는 다시 새 직장을 구해야 했다. 

마음 편히 6개월 동안 퇴직금과 국가지원 금액을 알차게 받아먹으며 쉬엄쉬엄 구직자리를 알아봤었다. 그렇게 고르고 골라 온 것이 지금의 직장인데 사실 처음 여기 입사하고 분위기가 꽤 쎄했다. 나 이전의 여직원 3명이 입사해서 줄줄이 퇴사했다는 소리를 들었기에. (여자의 촉이랄까, 직감이랄까) 똥촉이던 나에게 이상한 쎄함이 찾아왔었는데 그게 진짜 '도망쳐'의 촉이었을 줄은 그땐 꿈에도 몰랐다 ^^. 

일단 업무량이 굉장했다. 주먹구구식의 업무에 제대로 갖춰져있지 않은 시스템. 그로인해 한 업무에만 비정상적으로 투여되는 시간의 양이 상당했다. 게다가 회계팀인데 인사총무팀 업무도 해야했다. (중소기업이니까) 그리고 세무법인이 껴있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우리가 세무사인 것 같은 역구조의 현상으로 업무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더군다나 분명 나는 회계팀으로 입사를 했는데 타팀의 업무까지 지원해야 하는 지경에까지 발생했다. (이유는 회계팀도 막날에 이 리스트를 토대로 거래처 지급을 해야하니 그냥 같이 좀 해라 이거였다) 우리팀은 3명이고, 타팀은 2명이었다. 그러나 우리팀이 1명 더 많다는 이유로 같이 해라 이렇게 돼버렸다. 그냥  딱 그 마인드였다.  1명이 2명분의 일을 하기를 원한다는 것. 그래야 회사 입장에선 돈도 굳고 좋으니까. 근데 점점 선을 넘기 시작했다. 이제는 전화도 저기서 잘 못받으니까 인입되는 전화까지 받아 달란다.(회계팀인데 콜업무까지? 으잉?) 이해가 안됐지만 그러나 했다. 나의 최대 장점 버티기가 또 발동된 거다. 

익숙해지면 할만 하겠지.
버티다보면 괜찮아지겠지.
항상 그랬으니까. 
3개월만 지나면 다 익숙해졌던 것처럼. 

그런데 나의 생각과는 달리 여긴 그게 통하지 않았다. 밀려들어오는 콜과 거래처 전산 입력 때문에 나의 업무는 점점 뒷전이 되었고, 나의 업무에 몰두하려고 하면 상급자가 콜 튕겼다는 메시지를 계속해서 보내왔다. 그로 인해 집중은 불가했고, 전산입력을 안하고 있는게 보이면 상급자는 바로 전산입력 좀 하라는 말이 떨어졌다. 이런 이유로 나는 점점 노이로제+강박증이 생겨났고 매순간 엄청난 긴장 속에서 업무를 지속해야만 했다. 

뿐만이 아니었다. 23년도 결산작업 도중 퇴사한 선임자의 업무 실수와 이중으로 지급한 건들이 하나둘씩 발견되면서 세무법인에서 확인자료를 요청했다. 23년도에 이 회사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1도 모르는 나에겐 그야말로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소리었다. 

이걸 어떻게 소명하지? 
확인을 어떻게 해야하지? 
무엇부터 하면 되는거지?

눈 앞이 아찔했다. 그래도 버텼다. 해보려 했다. 전조증상은 그때부터 시작됐던 것 같다. 첫 증상은 잦은 위경련이었다. 내과에서 약을 처방받아 먹어도 그때뿐이었다. 약 복용을 중단하면 다시 또 재발됐다. 이때가 아마 입사한지 2달이 넘은 차였다. 그래도 견뎠다. 결산은 곧 끝날 거니까. 이 결산만 어떻게든 끝나면 선임자가 뿌려놓고 간 똥으로 받을 스트레스는 이젠 더 없겠지 하며 마인드컨트롤 했다.

그런데 몸이 이상해졌다.

위경련은 더이상 없었지만 출퇴근 시 지하철 안에서 간헐적으로 심장이 두근거렸고, 가슴이 답답했고, 과호흡이 생겼고, 정신이 아득했고, 식은땀이 났고, 손발이 저렸고, 오한이 들면서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은 증상이 나타났다.

진짜 미칠 거 같았다. 죽을 것 같았다.
그래서 생존본능처럼 아무역에서 뛰쳐나갔다.

벤치에 앉아 눈을 감고 숨을 고르었다. 그제야 좀 살 것 같았다. 온 몸은 얼음장처럼 차가웠고 전신은 식은땀으로 범벅이었다.

내가 왜 이러지.
이게 뭐지.

그때도 그저 컨디션이 안좋은 건가, 싶었다. 그러나 원인모를 증상이 주에 1-2번씩 찾아오니까 점점 출퇴근길이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가뜩이나 회사에서도 초긴장상태인데 이젠 출근길에서까지 긴장의 시작점이 돼버리니 결국 정신적으로 무리가 가기 시작했다. 괜찮았다가 아무렇지 않았다가 그러다 또 느닷없이 찾아오는 불청객 때문에 아무역에서 튀어내리고 숨을 고르고 몇 개의 열차를 떠나보내기를 그렇게 여러 번. 여러 날.

몸은 꼭 물먹은 스펀지 같았다.
아무것도 하고싶지 않았다.

난생 처음 겪어보는 해괴한 증상에 무얼 어떻게 해야할 지 몰랐다. 그냥 그게 전부였다. 증상이 터지면 역에서 내려서 숨고르기가 전부. 그리곤 무거워진 몸을 겨우겨우 이끌고 회사에 도착해서는  언제나 진빠진 상태로 업무 수행을 해야했다.  하지만 워낙 정신력이 강해서 다시 또 생각을 고쳐먹었다.

빈번하게 일어나는 게 아니니 이정돈 괜찮다고.
그래, 별일 아니라고.  

그러나 그 생각은 얼마지나지 않아 박살나 버렸다.  예기치 못한 태풍이 또 한바탕 휩쓸었다. 전임자가 처리하지 않고 퇴사한 바람에 고용노동부에서 취업규칙 미이행에 대한 과태료 예정 통보가 날아왔고, 타부서에서 점심시간 1시간을 꽉 채워서 온다며 텃새부림을 당해야 했고, 그리고 급여명세서 왜 안주냐는 클레임까지 고스란히 내가 감당해내야 했다. (알고보니 예전부터 여긴 급여명세서가 있음에도 급여명세서를 직원들에게 제공하고 있지 않았다고 한다.)

숨이 막혔다. 그래도 처리해야 했다. 고용노동부엔 이러한 사정을 설명하며 도와달라했다. 그러니 주무관님이 사정을 알고 기한을 주셔서 그 기간 안에 취업규칙서와 모든 직원들의 서명을 받아 완료처리를 할 수 있었다. 급여명세서는 앞으로 전직원에게 급여 지급날  바로 이메일로 송부하는 것으로 대표님께 컨펌을 받았고, 점심시간은 억울하긴 했지만 결국 여긴 다들 그렇게 하는 곳이니까 10분 일찍 들어오는 걸로 상사분과 협의했다. 결국, 나는 이곳에서 완벽한 을이었다. 타인이 저지른 모든 것을 바로잡고 정정하고 아둥바둥거리며 뒷수습을 해야만 했다.

그렇게 태풍은 잠잠해졌다. 아니. 내겐 이제 시작이었다.

태풍은 지나갔지만 그로부터 얼마지나지 않아 모두가 잠들어 있는 새벽 4시. 나는 엄청난 숨막힘과 흉부 짓눌림에 잠에서 깼다. 심장은 마구 미친듯이 쿵쾅였고, 심장이 콕콕 쑤시며 타들어 가는 듯했다. 숨은 개마냥 헐떡거렸고, 손발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떨렸다. 전신은 오한에 식은땀으로 뒤범벅였다. 그야말로 죽을 것 같았다. 진정은 쉽게 되지 않았고 이대로 가다간 진짜 죽을 것만 같은 거대한 공포심에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남편도 이 날 너무 놀라 잠에 들지 못했다. 계속 내 떨리는 손과 발을 열심히 주물러 주었고, 따뜻한 물을 계속 마시라고 챙겨주었다. 남편이 뭐라뭐라 얘기했던 것 같은데 전혀 귀에 들려오질 않았다. 그래도 옆에서 몇시간동안 보살펴준 덕분일까. 그 정성에 나는 진정이 되었고. 마비걸린 것 같았던 머릿 속으로 남편의 말소리가 천천히 입력되기 시작했다. 남편의 괜찮아? 라는 소리가 귓가에 들리자 나는 그제야 비로소 첫 입을 뗄 수 있었다.

아니. 나 너무 힘들어.

그리곤 꺽꺽 거리며 남편의 품 안에서 오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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